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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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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토굴>

간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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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단편소설 <토굴>

  • 작성일 2019-01-10 오후 9:28:00 |
  • 조회 21


토굴
 
대문도 없는 집을 나오자 대문이 있는 앞집 노인이 나타났다. 나는 인사를 했다.
‘어디 가는가?’
‘예, 친구가 오기로 해서 마중을 갑니다.’
노인은 뚜렷한 목적에 흔쾌이 일을 보라는듯 골목길에서 비켜서 주었다.
나는 수년전 태풍에 날아간 수령 사 오백년 가량된 잘린 소나무를 지나 정류장으로 향했다.
어제는 노인에게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노인은 대처에 나가 높은 공부를 한 녀석이 출사해 호령도 하고 고향의 노모를 호강시키고 그리고 느즈막에 돌아오길 바랐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동네사람들이 똥묻은 개취급을 잠정적으로 복합적 단선적으로 해대기 시작했고 그런 거부감이 어제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다를 수 있다. 지금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고 그는 아마 올 것이다.
그제 도착한 친구의 편지에는 오늘 정오 차를 타고 바로 내가 가는 정류장에 도착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지나고 농협과 소방서와 파출소? 지구대라고 쓴 수풀만 무성한 건물을 지나 나는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다.
‘어머 인구 오빠 아니세요?’
전해지는 소리만으론 상냥하고 동네에서 듣지못한 낯설고 이지적인 목소리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맞구나. 맞네. 인구 오빠. 저, 은지예요.’
은지가 누구더라.
나는 잠시 여자를 돌아보았다. 아니면 한참 돌아 보았다.
잘모르겠다. 나도 한때는 여자라면 온갖 허접의 사돈 팔촌까지 안면인식 능력과 이름 취향 심리 상태까지 꿰어보는 야릇한 재주가 있었지만 어느날부터 그 재주는 나를 떠났다.
‘누구신지?’
‘은지라니까요.’
이름이야 은지면 어떻고 은자면 어떤가. 언제 어디서 만난 자인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물론 생김새는 나를 부르던 그순간부터 정착되어, 내가 숨어든 동네의 아낙이 아니라 몇 달전까지만 해도 기를 쓰고 몸부림 치던 서울의 커리어 우먼을 닮아 있지만, 내가 서서히 곯아 가듯 이런 장소에서는 이런여자와의 조우가 그리 반갑거나 나를 일깨우지는 않았다.
‘아 초등학교 동창이구나?’
‘호호 아닌데요. 오빠 눈이 많이 나빠지신가 봐.’
‘그럼, 대구에 살던 은지구나.’
‘그것도 아닌데요.’
여자는, 나이를 정확히 짐작할 수 없는 이 딸내미는 땡볕에 나를 좀 세워둘 목적인지 아니면 우리가 어떤 극적인 만남의 주인공이라도 되는지 희롱하는 듯 했다.
‘어? 그렇다면 잘 모르겠군요. 혹시 서울 대학로 출판사에서 일할 때 만난...’
‘오빠 정말 너무 하시네. 저 은지라구요.’
나는 서서히 여자가 낯설어 지고 나도모르게 경어가 나오면서 점점 멀어지려하는데 은지는 더 환하게 나를 반기는 것이다.
‘모르겠어요. 어디서 어떻게 엮인 인연이지요?’
마침내 나는 정색을 하고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평해에 노을민박하다가 도서관 만들거라고... 지난달 서울 손님이랑 이틀간 함께 마시고 오누이 하기로 했잖아요. 오빠, 정말 섭섭하게 왜 이러세요. 혹시 인식장애라도...’
아, 그 은지로구나.
그랬다. 지난달 먼 친척이자 서울에서 자주 어울리던 친구가 내려와 동네에서 만나기는 뭣해 평해에서 민박을 한적이 있다.
‘그래. 은지구나. 화장을 해서 몰라봤다. 하하. 근데 여기까진 웬일이니?’
‘이 동네에 책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지금 그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오빠 집이 근처예요? 어디?’
은지는 상냥하고 나긋하지만 나는 적당히 찌들어 있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어, 이 근처야.’
‘하, 오늘 일진이 좋으려나. 오빠도 만나고 책도 기증받고.’
은지는 소형 승용차를 타고와 기증자의 집을 정확히 몰라 통화를 하려던 차에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오빠, 여기 적산가옥이 있나요?’
‘적산? 언제적 적을 말해?’
‘일본 말이에요. 일본 적산가옥에 기증자가 산다던데...’
십여년을 동네서 코흘리개로 살고 도회로 나가 교육을 받은 나는 고향땅에 그런 집구석이 있는지 금시초문이고, 내가 고향을 떠날 때만해도 동네는 온천 관광지로 아주 북새통일 때였다.
‘글쎄, 그런집이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있어도 책을 기증할만한 사람이 우리동네에 있을려나?’
나는 정류장 쪽으로 걸으며 말했다.
훤히 회차로와 온천으로 가는 대로 광장이 맞닿은 곳에 와서야 안심이 되었다.
친구가 오든 말든 일단은 마중을 하는게 목적인지라 버스에서 내린 그를 우왕좌왕하게 버려둘 수는 없었다.
‘흠 오빠는 고향이라면서 참 아는게 없구나.’
나는 갑자기 은지의 나이가 궁금했지만 물어 볼 수는 없었다.
요즘은 나이를 자주 잊어 먹는다. 내 나이도 잊고 다만 친구들이 나이를 밝히는 순간이 되면 아, 나도 그나이겠거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은지는 아가씨 같기도하고 서른이 되었거나 그 근처인것 같기도하고 옷차림은 당장에라도 연애를 걸만큼 도시풍이라 나는 낯설고 익숙했지만 감정의 근간을 잡지는 못했다.
‘은지야. 너 돈있으면 음료수 하나 사와라. 저기 자리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자, 같이.’
‘네, 그러세요.’
은지는 생글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24시간 문을 열지 않는 편의점이 이상했고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편의점을 운영하는 여자가 극도의 우울증을 앓아 자살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도 알아, 참 재수없는 익숙함이 다가왔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서로 시계를 보며 정오에 어디서 출발하는지 온다면 소요시간을 감안해 언제쯤 올지를 얘기하다 잠시 풍경속 정적이 되었다.
한시간에 한번씩 왕래하는 버스가 두 번이나 그냥 지나치고서야 나는 은지의 손에 끌어 적산가옥을 물어보고 어? 거기. 그래 따라오너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친구는 안오는 것인가.
어떤 긴장 긴박한 느낌이 들었지만 은지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가옥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마당에 세묶음의 책이 놓여있었다.
은지는 차를 가지러가고 나는 책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심드렁했다.
주머니에서 친구의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차마 펼쳐보지는 못하고 혹 내가 날짜를 잘못 안 것인지 아니면 정말 친구가 토굴을 찾아 온다고 했는지, 나는 나의 기억을 믿지만 조금은 의심스러워졌다.
차는 가옥의 마당까지 한번에 들어왔다.
‘에휴, 저 코너에 있는 다리가 차가들어오기 좀 애매하지만 이런집 접수하면 그런대로 살만 하겠어요. 여길 접수해서 도서관을 만들까.’
은지는 혼자서 책묶음을 잘 실었다.
그녀는 나를 도와달라거나 손을 빌리려하지 않았다.
‘근데 은지야, 너 몇 살이냐?’
‘이 오빠가 오늘 좀 술이 덜 깨시나 봐.’
 
노모의 식사를 돌보지 않았다. 친구는 세 번이나 버스가 돌아 나가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은지는 평해에 나가 자신과 책정리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자고, 회덮밥을 잘하는 집을 알아냈다며 나를 끌었다. 평해까지는 십리길이다. 옛날엔 이 길을 돌고돌아 걸어도 갔지만, 이젠 차를 타고 십여분 거리를 달려가면 된다.
노모는 식사를 혼자 챙겨 먹을까. 나는 대시보드에 은지가 보다만 책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로 잠시 눈길을 주다 말았다.
아마 혼자서 챙겨 먹거나 경로당에서 적당히 해결하고 들어오겠지.
‘카프카라? 옛날에 남민전의 김남주가 광주에서 했다는 전설의 책방이 카프카인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머? 인구 오빠, 카프카 좋아하세요?’
‘아니, 난 그자식이 어떤 놈인지도 몰라.’
차는 평해에 다다랐다. 공용버스 정류장을 지나 은지가 민박을 하던 집이 나온다.
양옥을 적당히 개조해 민박을 했고 이젠 도서관을 하겠다며 터무니 없는 욕심을 부린다. 대체 이 마을에 책을 보러오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이 아이도 뭣에 씐건 아닐까.
마치 나의 낙향과 온갖 우려가 나를 따라다니며 돌듯, 이 아이에게도 어쩌면 미친 피와 기운이 넘쳐나는건 아닐까.
벽화는 민박을 할 때부터 있었지만, 간판을 떼고 이층으로 계단 공사를 했는지 자재가 널부러져있고, 계단은 위태롭게 이층으로 나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며 우울하게 뒷산의 지세와 반대편의 농지와 그 농지너머 해송을 지나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냄새는 어렴풋 넘어오는 듯 했다.
은지는 짐을 실을 때처럼 혼자 짐을 내리고 그것을 ‘마을 도서관 자평’이라고 선팅을 한 일층 입구에 부렸다.
밥을 먹기도 그렇다고 술을 마시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은지는 안으로 들어가 녹차에 얼음을 재운 머그잔을 들고 나와 내게 내밀었다.
대체 이 아이는 어쩌다 홀로 이 낯선곳으로 흘러와 민박을 하다가, 이제는 미친년처럼 도서관을 하겠다고 기를 쓰는 것일까.
여전히 내 주변에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자들이 가득한 것 같았다.
나는 잔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사서실로 이용할 넓은 공간에 의자를 하나 내어 놓고 앉았다.
다시 친구를, 편지를 확인해 보려다 말았다. 아마 맞을 것이다. 친구는 토굴을 알아보겠다고 분명히 썼고 탐방을 하겠다는 날짜는 분명 오늘이었다.
혹은 제발 오늘이길 나는 바라는지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올 이는 언젠가는 올테니.
‘은지야. 너 카프카가 죽기전에 동거한 여자 이름을 아니? 아마 일년쯤 살다 카프카가 죽었을 텐데 그때 카프카는 자신의 소설 ’굴‘을 제외하고 나머지 원고는 다 태우라고 했지, 아마. 여자는 시키는대로 한 것같은데... 그 여자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네. 이십년이나 어린 여자를 만나 일년을 동거하다 뒈졌지 싶은데...’
나는 이제 다 마시고 얼음만 남은 잔을 들이켜 아작 거리며 씹었다.
얼음에서 맹물이 얼 때 함께 정지한 비릿한 냄새가 입안으로 파고 들었다.
‘아니 오빠. 카프카에 대해 좆도 모른다 하지 않았나.’
‘어? 근데 조금씩 생각이 나네. 내 친구도 토굴을 찾아 온다고 했거든.’
카프카는 1924년 유월에 죽고, 죽기 한해전 발틱 해변에서 도라 디아만트를 만나 칠월부터 베를린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소설 굴과 작은 여자를 썼다.
‘굴을 팠는데 잘된 것 같다. 밖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커다란 구멍 하나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 없었다‘
소설 굴의 시작과 끝은 이러했다.
 
화숙은 오십 중반이 되자, 물론 이전부터 착실하게 살집을 키웠지만, 뚱뚱해져 좀 뒤뚱거리는 걸음을 했다. 남편은 삼척항에서 뱃일을 하며 가끔 고기를 가져왔다. 대부분은 죽었지만 화숙이 내건 횟집의 간판은 활어 전문이라고 써 있었다.
여섯시가 조금 지나 나와 은지는 전문점에 앉아 회덮밥을 시켰다.
맛이 더럽게 없었다. 은지는 꾸역꾸역 잘 먹었지만 나는 반 그릇을 간신히 넘기고 하는수 없이 소주를 시켰다.
은지와 주거니 받거니 하다 또 한병 또 한병, 이렇게 넘기다 보니 간신히 한그릇을 비울 수 있었다. 화숙은 동작이 엄청 꿈떠 두병이 넘고 부터는 은지가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들고 왔다. 화숙의 저 풍만하고 태평한 몸집을 보다가 나는 은지에게 은근히 말했다.
‘저런 육체로 섹스가 가능할까?’
‘왜? 저런 육체는 섹스못하란 법있어. 마음만 먹으면 될껄.’
은지는 말했다. 은지는 술이 들어가면 무릎을 껴안고 우측으로 약간 기울어진 자세로 마신다.
나는 최대한 허리를 세우고 가부좌로 팔장을 끼고 마시는 편이다.
‘한번 물어볼까?’
내가 말했다.
은지는 피식 웃어보였다.
‘화숙 아지매. 아재하고 밤일은 잘하지요?’
홀에 누워 티비를 보던 화숙은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더니 날더운데 무슨 빠구리 타령이여라며 다시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두잔을 마실때는 은지가 집까지 바래다 주겠지 했지만 은지도 술을 마신터라 나는 십리길을 옛 기억을 떠올려 걸어갈 참이었다.
‘화숙 아지매 오늘 덮밥 맛 더럽게 없어서 돈은 못줘.’
나는 비틀거리며 신발을 신었다.
은지 한번 웃어 보이더니 지갑에서 지폐를 끄내 몇장인가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밖은 어둠이 내렸지만 더웠다. 바람이 좀 불어주면 좋을텐데.
몇걸음 가지않아 자평 도서관이 나왔다.
불하나 없어 어둡고 커다란 구멍을 하나 내밀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담배를 물고 팔장을 끼고 잠시 도서관을 바라보다 말했다.
‘굴이네. 친구가 굳이 백암산으로 토굴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어.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이집이 마치 굴같은데.’
내가 말하자 은지도 내 옆에 와 자평도서관의 생김을 바라보았다.
해맑게 웃었다.
대체 이 아이는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이렇게 해맑게 살까.
나는 궁금했지만 묻지않았다.
‘은지야. 저녁 잘 먹었다. 나 갈란다. 십리길 가려면 부지런히 가야할 것 같아.’
‘오빠 무슨 소리야. 가다 멧돼지나 산적 만나.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 혹시 알아 내일이라도 친구가 고속버스를 타고 평해터미널에 내릴지.’
‘어? 그런가. 그렇다면 들어가 누워볼까.’
나는 자평도서관 입구로 들어갔다.
‘오빠는 카프카 소설의 ’시골의사‘ 같아.’
은지가 말했다. 그럴지 모른다. 어떤 도움 출구 구원 따위가 사라져 짐승처럼 지하건축을 해야하는 지금이, 나도 친구처럼 토굴을 파야하나. 친구가 와야 물어볼텐데.
접이식 침대를 가져와 누웠다.
은지는 샤워를 안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술이 좀 깨면 하겠노라 하며 재떨이를 찾아 담배를 물었다.
‘근데 은지야. 넌 카프카가 시골의사를 쓴 걸 어떻게 알았니?’
‘그니깐, 나도 오빠처럼 막 기억이 나나봐.’
은지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 소설 어떤 내용이니?’
‘그냥 오빠 인생이랑 비슷해. 나중에 한번 읽어봐.’
내가 알기로 카프카는 정석으로 소설을 쓸줄 모른다.
산업혁명 후의 프라하 빈 그리고 뮌헨이 발전할 때 떠돌이 유대인의 유일한 아들로 살아야 했던 카프카는 부자간의 갈등 유대인의 이중적 성향에 대한 모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소설을 비비며 살고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직업과 현실 등이 괴기스럽게 성격을 만들었을것이다. 아니라면 메모나 시놉시스에 불과한 것을 소설이랍시고, 아니지 당시엔 출판보다는 낭독이 유행이었으니 그목적으로 썼을 지도 모른다.
‘오빠 최근에 카피라이터가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을 냈는데, 그 카프카가 한말 아닌가?’
담배를 비벼끄자 은지는 씻을 준비를 마치고 내게 물었다.
‘몰라.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내면의 얼음바다를 깨는 도끼가 책이라고 했나? 아마 당시엔 창작이란 개념보다 활판에 대한 우월감이 더 했겠지.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모른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도 나는 모른다.
그래서 대체로 대화를 통해 왜곡된 기억을 되살리거나 바로잡거나 -대부분 바로잡힌 기억은 오래가지 않고 다시 왜곡된 원점에서 누군가를 통해 재생되지만, 그런 나이가 어느날 되어 버린 것이다.
은지는 책장과 무더기가 어지러운 곳을 지나 욕실을 향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나, 깊은 잠을 잔 것처럼 잠시 기절을 한 것 같았다. 은지는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가운을 걸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나는 순간 입안의 텁텁한 담뱃내를 뱉고 싶었다.
‘물 잘 나오니? 나도 씻을까?’
‘잘 생각했어. 내가 옷가지 챙겨줄게.’
은지는 유니폼 반바지를 팬티대신 내밀고 낡고 늘어진 반팔 티셔츠를 내놓았다.
욕실 거울을 오래 바라보다가 어쩌면 친구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카프카처럼 어떤 자기모순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증상은 비슷했다.
한때 함께 창작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늘 쓰다만 소설을 들고와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곤 했다. 물론 그중엔 좋아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여자 회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심드렁했다.
이게 소설이냐. 어쩌면 그는 이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타인이 끊임없이 소설이 무언지 자문하게 만드는 재주, 그런게 그 친구의 특기인지도 모른다.
거울속 남자는 친구를 만나 모든게 가능했던 시절로부터 오래 단절되었는지 머리가 세고 주름이 가득하고 피부가 아주 거칠어 있다.
자지도 잘 서지 않았다. 아무리 요의를 느끼고 해도 텐트를 치는 일이 줄거나 없거나 혹은 왜곡된 기억에 저장된 정도였다.
은지의 나이를 안다면 나도 카프카처럼 일년정도 저 아이에게 동거를 하자고 할 참이지만, 이십년이나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몰라 정성을 들여 배설 기관마다 샤워를 했다.
은지는 선풍기 앞에 앉아 몸을 말리고 있었다.
‘은지야 근데, 시골의사 분위기가 아무래도 겨울 같은데, 맞니?’
은지는 대답대신 웃으며 돌아보았다.
나는 어느 난민촌 아이가 적선받은 옷을 입고 나온 모양으로 은지 앞에 서 있었다.
순간 은지가 여자인지 궁금해 가슴에 손을 넣어보았다.
아주 작은 젖이 만져졌다.
 
터미널에 딸린 식당에서 찌개를 하나 먹고 실외 나무의자에 앉아 버스를 바라보았다.
‘오빠 전화를 한번 해보지 그래?’
은지는 말했다. 그럴까.
나는 전화기를 끄내 입력된 번호를 확인해 보았다.
이강희. 나는 순간 이강국이란 인물이 떠올랐지만 버턴을 눌러 신호가 가기를 기다렸다.
이강국은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영해 박씨 박헌영과 함께 월북했으나 북한이 싫어하는 3가지 이유로 숙청된 인물이다.
한참 신호가 가고서야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희니? 나 인구야. 왜 안내려와?’
‘인구야. 지금 영해 지나는 길이야. 좀만 기다려.’
강희는 대답했다. 어제 나는 무슨 짓을 한 건가.
이렇게 전화를 하면 금방 알텐데, 아니다 어제 날짜가 아닌걸 알고 부러 안했는지 모른다.
‘은지야. 이제 영해 지난다네. 여기서 좀 기다리자.’
‘그래’
은지는 상쾌하게 대답했다.
‘어제 말이야. 내가 니 자궁에 사정한 것 같은데, 맞니?’
‘이 오빠 왜이러셔.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봐. 밤새 좋으냐고 물어놓고선. 물을 때마다 내가 좋다고, 당신 연세에 이만큼 발기해 마구 쑤셔주는게 신기하다고 했었잖아.’
‘그래? 나도 알지. 그냥한번 확인해 보려고.’
우리는 어제 만나 기다리던 버스정류장 보다는 훨씬 아늑하고 편안한 사이가 되어 강희를 기다린다. 강희는 토굴을 찾아온다.
오면 함께 토굴이 있을 만한 곳을 누빌 것이다. 마음에 드는 토굴하나 만나거나 안되면 직접 파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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