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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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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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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단편소설 <여자연구>

  • 작성일 2019-01-12 오후 2:18:00 |
  • 조회 7

 
어느 날 집구석에 오니 책 한권이 굴러다닌다. 어느 천박한 집단이 낸 작품집으로 보이는데, 어디서 굴러왔는지는 몰라도 관심을 두지 않다가 화장실 가는 길에 무심코 들고 들어가 통독을 하고 말았다. 창작집단 b는 1993년 지방의 어느 소모임 이름이고, 이들이 낸 창작집 ‘고독사의 세가지 유형’은 얼마전 발간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한 이들은 십여 명 남짓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다들 알파벳 소문자로 지칭되어 있다. 소문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자인지 나타나 있지 않고 그저 u, s, g, n, w, o, d, r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가장먼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는 유의 글이 들어온다. 유는 이렇게 쓴다.
 
1
 
어린 시절 엄마에게 뒈지게 맞고 자란 여자가 있다. 여자는 가난한 시절 밖에서 실컷 뛰어놀다 돌아와 깜깜해지고 잠들었다가 엄마가 깨우면 일어나 목욕을 했다. 젖이 손에 잡힐 만큼 자라고 음모가 자라고 월경을 시작해 절절매던 시점이다. 여자는 일어나 목욕을 하고 다시 엄마에게 잔소리나 매질을 당하기 전에 잠든다. 어떤 가난의 풍경도 없고 다만 여자는 엄마의 매질이 무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덩치가 엄마만큼 되고 나중에는 정신적으로 엄마보다 성숙한 여자가 되어서도 여자는 절절맨다.
가끔, 나중에 어른이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되거나 돈을 더럽게 많이 벌거나 그때는 엄마에게 복수를 하리라 생각을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여자는 모르거나 자주 잊곤 했다.
 
여자의 엄마는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밖에서 일했다. 도시의 중추 산업이거나 인력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않고 나가 억척을 부렸다. 덕분에 다섯 남매는 밥을 먹었다.
여자가 열 살이 좀 지나서부터, 그러니 엄마가 노동으로 억척을 떤 지 이십년이 가까운 날, 엄마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공장 남자는 물론이고 먼 친척이거나 지나가는 남자 누구나, 엄마는 연애를 일삼았고 그것은 풍문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나 가끔 현실이 되어 여자의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여자는 가장먼저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으나 탈출에 대한 강한 자의식, 이런 게 오히려 여자를 묶어 두었다. 여자는 탈출하지 않고 자유로울 이유를 만들기 시작한다. 다들 여고를 마치면 어디론가 떠나갔지만 여자는 기를 쓰고 진학을 하겠다며 우겨, 겨우 지방의 미미한 학교에 진학했다.
또래들은 한미한 학교와 지방과 그 시기에 맞는 온갖 열병으로 들떠있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탈출을 감행한 것일 뿐 또래와 나눌 정서적 교감은 없었다. 여자는 자신이 미치지 않고 스무 살을 맞이한 사실에 늘 감탄하며 엄마의 매질로부터 멀리 도망 와 있는 지 가끔 점검을 하곤 했다.
 
2
 
유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그의 어설픈 시가 두어 편 등장한다. ‘라면을 끓이며’ ‘나의 첫 경험 번개탄’ 등 몇 편이 이어진다. 그리고 케이가 등장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제목도 정하지 않고 집단 연작을 하기로 한 모양인데, 답답하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해 나는 본다. 케이는 드디어 제목을 단다.
 
3
 
우리는 ‘여자연구’를 하기로 했다. 여자에 대해 아는 모든 걸 동원할 수 없지만, 여자와 관련된 무언가를 이해하고 넘어가려 한다.
불행하게도 내가 아는 여자는 유의 여동생 둘 뿐이다. 유의 여동생 둘은 참 천박하지만, 그래도 나를 오빠라고 불러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유가 집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몰라도 여동생 둘은 오빠에게 늘 적대적이었고 유의 집에 찾아가는 날이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빠를 개 취급 했다.
한 번도 오빠라고 다정히 불러보지 않았고 호칭이 ‘야이 개새끼야, 씨발 놈 죽여 버릴까’ 정도이다. 놀랍게도 유는 동생들에게 욕을 얻어먹을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한번도 손찌검을 하거나 같이 욕을 하는 경우를 못 봤다. 유가 그만큼 양반인 것도 아닌데.
 
유가 말한 여자를 나는 안다. 여자의 이름을 알고 여자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안다. 그러나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전해들은 얘기에 불과 하므로. 여자는 이십대 내내 엄마 손에 자랐고 유의 말처럼 뒈지게 얻어맞았고, 처 맞은 날은 함께 목욕탕에 가 그놈의 남자 후리는 지긋지긋한 얘기를 들었다. 여자는 엄마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여자의 엄마는 공장 생활을 접고 어느 날 부터는 보험설계사를 했고 그럴 때면 주로 이여사 박여사 김여사 등이 목욕을 같이 했다.
‘ 아, 글쎄 이년이 우리 셋짼데, 병신같이 인간 구실을 못해. 어디 나가 남자를 후리지도 못해 사고를 치지도 못해 아직까지 엄마 손에 얹혀살며 그놈의 공부가 뭔지. 늘 공부한다며 지랄이네 글쎄.’
‘어머, 무슨 소리야. 우리 딸년은 이혼하고 돌아와 방구들 신세를 지면서 손 하나 까딱 안하는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다 늙은 딸년 수발을 들어요. 이놈의 팔자.’
여자는 불편한 대화를 묵묵히 듣는다. 여자는 엄마에게 먼저 일어 난다거나 어디 볼일이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여자는 여자의 엄마와 그 친구들 이여사 박여사 김여사가 떠드는 소릴 여름 날 대중목욕탕 한가운데서 침과 욕설이 튀기는 가운데 듣거나 눈치를 보며 때를 민다.
 
유가 말하는 여자를 나는 안다.
여자는 스물아홉 살 까지 엄마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자가 엄마 손을 벗어난 것은 엄마가 친척의 먼 인척 쯤 되는 남자를 소개해주고 그 남자를 따라 다른 도시로 떠나보냈기에 가능했다.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 엄마만큼 뒈지게 맞았다. 남자는 전형적인 꼴통이었다. 대화가 안 되었고 수발을 제대로 들지 않으면 매질을 일삼았다.
여자는 늘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여자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공장에 나가 돈을 벌었고 가끔 식당에 나가 설거지를 하며 푼돈도 벌었고, 남자에게 술을 사다 바치고 남자가 술에 취해 쓰러진 시간만 자유롭다가 남자가 술에서 깨면 맞았다. 얼른 공장으로 갈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시간은 더디 갔다.
 
유가 말한 여자를 나는 안다.
그 여자는 서른에 남자를 만나 죽도록 맞으며 술시중을 든 여자다. 여자는 남자가 데려온 날로부터 이틀이나 사흘은 남자구실을 한다며 섹스를 했지만 다음날부터 이전에 알던 여자를 데려와 잤다. 다행인 것은 남자가 데려온 여자는 여자를 매질하지 않았다.
여자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어머 자기 오늘 너무 섹쉬 하네 어쩌구하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지만 여자를 구박하지 않았다.
남자가 술에 취해 데려온 여자의 배위에 올라가 엉덩이를 심하게 요동을 치면 여자는 단칸방을 나오거나 거실에서 행해지면 방이나 주방으로 피했다.
 
나는 유가 말한 여자를 알지만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누구나 나만큼 알기 때문에. 여자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단하나 있다면 그래도 여자는 어느 날 나도 결혼한 여자야, 이거 왜 이래, 라며 누군가에게 삿대질을 했다는 것인데 그게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여자는 아마, 그 순간만큼은 자신도 여느 여자처럼 여자로 행세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혼이 무슨 벼슬이라고, 지금은 다들 혼자 잘사는 세상이 되어 가는데. 그놈의 유세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4
 
케이는 시를 쓰지 않았다. 그는 유가 쓴 글에 ‘여자연구’란 제목을 달고는 대체로 그 여자가 이십대를 보냈음직한 시기를 말하려다 힘에 부치는지 그만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엄마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여자에 대한 얘기 정도로 이해한다.
케이가 지나간 후 등장한 것은 알이었다. 알은 ’여자연구‘라는 글 외에 소설을 한편 썼으나 그걸 여기 공개하기엔 흐름이 맞지 않을 것 같다. 알이 여자연구라는 주제에 맞는 글을 쓴 대목부터 보자. 알은 이렇게 썼다.
 
5
 
여자는 용띠였고 항렬에 따라 진이라는 이름을 썼다. 진은 오행으로 토지만 여자는 아무래도 띠에 더 적합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여자가 남편에게 맞았다는 것은 일견 맞는 말이긴 해도 여자가 대부분, 진이 자초한 구석이 있다.
진은 결혼하기 전 동네남자 욱을 흠모했다. 욱은 고교시절 하교 길에 동네 불량배에게 돈을 뜯기고 심하게 맞아 무공을 연마했다. 무공을 연마하다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물론 당시 입시 제도를 핑계 삼을 수 있지만 욱의 실력이면 지방 국립대학의 인기학과는 쉽게 들어갈 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재수를 했다. 욱은 열일곱 과목이라는 과중한 과목으로 입시에 실패했다고 말했고 그의 가족들은 믿었다. 물론 다음해 입시 과목이 절반으로 줄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중상위권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재수보람인지 욱은 마음을 먹지 않고도 누구나 가는 지방대학에 진학을 했다. 이것을 진은 본 것이다. 진이 욱을 흠모한 유일한 이유는 지적허영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욱의 웃음이나 욱의 농담이나 욱의 걸음걸이나 어느 것 하나 진을 혹하게 할 것은 없었지만 느긋하게 재수를 해 대학에 간다는 것, 이것은 진에겐 환상이었다.
 
진의 남편은 한이었다. 이 자를 술주정뱅이 정도로 알지만 그도 나름 질서가 있고 세계관이 있는 자이다. 다만 욱과는 조금 달랐을 뿐이다. 욱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것이 만약 진이 한과 결혼을 하지 않고 욱과 했다면, 아마 한보다 더한 매질과 구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진은 몽매한 여자이다.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진은 욱을 연모했고 그 이유를 한은 물론 알고 있었다.
‘가보지 않았기에 아주 꽃길인 것 같지, 이년아. 그놈이 나보다 더한 꼴통 새끼란 걸 알려주마.’
퍽 퍽 퍽.
한은 진을 팼다.
한이 결혼 일주일 만에 데려온 여자의 이름도 진이었다. 진과 동갑이었고 동향이었고 외모도 비슷했고 지적 수준도 비슷했고 섹스를 하는 테크닉마저 비슷했지만, 한은 데려온 진을 더 보살폈다.
적어도 데려온 진은 어떤 허영에 씌어 지나가는 남자1에게 몰입되거나 늘 흠모하지 않았다. 그 차이는 매질과 사랑으로 달리 나타났다.
 
그럼에도 진은 허영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을 버리면 어쩐지 돌아갈 곳이 없을 것 같았다. 막연한 생각이었다. 매질이 이어질수록 진은 욱을 떠올리며 참았다.
가끔 욱을 먼발치에서 보기위해 핑계를 만들어 친정에 오면 꼭 메신저 역할을 하는 유를 찾았다. 유는 늘 선의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진의 마음을 헤아려 욱과 자리를 같이 하게 했다. 욱도 열에 일곱은 거절했지만 한두 번은 나와 진을 대면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닌 것조차 의미 있어야 했고, 그런 것을 각자 강요하거나 드러내곤 했다.
유는 둘이 오래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이 환상으로 사는 건 현실에 목숨을 걸고 쓰러지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이어주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욱은 진에게 말했다.
‘나는 만능이 되고 싶었어요. 싸움도 잘하고 잔머리도 잘 굴리고 줄도 잘 서고 그래서 좀 남보다 나은 무엇, 그런 만능을 꿈꾸었지만 그게 안 되지요. 이건 아마 진도 알 겁니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나도 결혼을 미루다 겨우 눈먼 여자를 하나 만났고 그게 지옥으로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그냥 살았어요. 애도 낳고. 물론 애 때문에 그나마 헤어지지 않고 산 구석이 있지만, 근데 이젠 이놈의 자식도 포기했어요. 밤낮 오락이나 하고 그저 한사람 등골 뽑아 두 사람 좀 편안하게 사는 것, 이게 제 삶의 전부지요.’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신은 매질은 하지 않잖아요. 당신이 나의 남편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자랑하고 얼마나 봉양하고 얼마나 봉사를 할까요. 물론 인간은 간사해서 그게 욱이라 할지라도 작심삼일이겠지만. 당신도 한처럼 나를 때리겠지만 당신에게 맞으면 좀 덜 억울할까요.
진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6
 
알은 여기까지 쓰고 말았다. 다음은 에스가 이어 쓴다.
7
 
여자를 나는 구체적으로 안다. 여자는 나와 현재 진행형이기도하고 머잖아 번개탄을 마시고 이승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여자가 이미 몇 번 번개탄을 마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가 심해 여자는 수도원의 쪽방으로 흘러 들어 왔고 나는 쪽방 옆에서 신학서적을 번역하거나 교정하거나 출판하는일, 가끔은 예수회 소속의 몇몇 교회로 홍보를 하곤 한다.
 
지방에서 욱과 함께 대학을 다니긴 해도 욱을 전혀 모른다. 그자는 무공 연마를 위해 학교를 다녔을 뿐, 그시절 읽거나 부딪치거나 또래가 지나간 통로를 극구 마다한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욱은 마치 외계인 같고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며 인생을 탕진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욱과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떠났고 욱은 돌아갔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해야할 일이 차고 넘쳤다. 나중에 결혼을 할 무렵 예수회 소속의 어느 기획사에 들어가 프로모션을 보았다.
어느 기획사라고 감칠맛나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예수회는 한말 독일선교사가 설립했고 일제시대는 일본의 관문이었고 해방후에는 미군이 인근에 주둔하며 주민에게 온갖 위협을 가하는 지역에, 성당과 수도원 출판사와 기획사를 만들어 지방의 문화에 아주 조금 간섭하고 있었다.
처음 지방도시에 기획사를 연 것은 아니고, 당시 같은 재단의 고교에서 교편을 잡은 어느 여자가 도시에 나가 책방을 하나 차릴테니 명의를 달라고 해 시작되었다.
여자는 책이 팔리던 시절엔 책을 팔았지만 이윽고 중심가로 진출해 책방은 구색이었고 이층에 문화기획사를 차려 각종 공연을 유치했다.
그 짓을 할 때 나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낚여 일하게 되었다. 여자는 훗날 구청장을 하기도 했으니 그때부터 돈과 권력에 대한 감각은 조금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선생질이 성에 차질 않아 떨어져 나왔겠지만. 나의 사수나 다름없는 여자의 이름은 와이지만 꼭 누구라고 칭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와이는 정치권으로 나가면서 내가 꼭 참여해 주길 바랬지만, 와이에게 나는 적당히 질린 상태였고 ‘조지나 건빵’이라고 도시의 본당 신부에게 한마디해주고 다시 선교사가 처음 지은 출판사로 돌아왔다.
와서 그동안 낸 책들을 점검하고 시의성 있는 몇몇 책을 기획하고 그리고 만들기도 했다.
하는 사이 돈과 결부된 여러 행정적 판단에 따라 나만 남고 북적이던 동료들은 촌구석을 떠났다.
 
여자의 이름은 강수진이라고 했다. 처음 수도원 쪽방으로 왔을 때 참혹한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수진의 나이가 마흔 초중반, 얼굴의 팔자 주름은 깊었고 입술과 눈자위는 퍼런 멍이 들었고 오랜 기근생활을 했는지 몸은 바짝 말랐지만 배만 불룩 나와 있었다.
수도원 조리를 담당하는 마을 여인의 말에 의하면, 수진은 이곳으로 오기 전 서울 인근의 어느 성당에서 용돈을 받으며 봉사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수녀들이 적당히 이용하고 적당히 보살펴주는 일일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곳 까지 수진은 흘러온 것이다.
 
성당은 아크로폴리스 처럼 마을의 언덕에 있고 첨탑은 그래서 더 높아 보인다. 상주하는 신부나 수녀들은 있지만 그들은 주말을 제외하곤 엄숙한 수도생활을 해 마치 투명인간 같다. 유일하게 소리를 내고 음식냄새라도 풍기는 곳은 수라간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마을 사람들을 쓴다.
그러니 나는 그런 이들의 매니저겸 터무니없이 큰 건물의 문지기 같은 존재랄까.
수진이 온지 며칠 지나 서로 눈인사도 하고 말도 붙이는 사이가 되었다.
여전히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여자의 어떤 멋, 아니 멋은 너무 멀리 있지만 여자의 가장 기본적인 맛을 느낄 수 없는 그런 꼴이었다.
한달이 지나자 수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욱이랑 동기라는데 혹시 요즘도 욱님과 연락을 하나요?’
수진은 어디서 들었는지 욱을 말했지만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런 자가 있었는지 조차 모른다.
‘모르겠어요. 근데 욱은 왜 찾으세요.’
‘죽기전에 한번 보고싶어서요.’
‘보고싶다는게 어떤 겁니까.’
‘고생했다는 한마디를 듣는것, 아니면 가능하다면 그와 신혼부부처럼 요 앞 순심모텔에 가서 한번 자보는 거요.’
‘음, 많이 좋아하시나 보죠.’
‘알고 보면 욱 님은 제 인생의 전부 같아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지는 몰라도 아마 세상에서 엄마 다음으로 알게된 첫 인간이라고 할까.’
‘욱도 수진씨의 이런 증상을 아나요.’
‘모를거예요. 그는 적당한 위선자이고 나도 이상하게 욱 님 앞에만 가면 내숭을 떨어요. 마흔중반이나 된 지금도.’
나는 ‘중증이구나, 번개탄이나 잘마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신부나 수사쯤으로 알아 나의 말이나 행동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닮아있었다.
‘그런데 왜 죽을 생각을 하세요. 욱을 만나 한번 잘살아 보자고 해보시지.’
수진은 배실거리며 웃었다.
‘그 말이 어려워 죽을 것 같아요.’
죽는 여자가 배실배실 웃지는 않는다. 처음 수진이 올 때 인상처럼 매우 그로테스크 한 경우는 몇 번 봤어도 이렇게 모자란 웃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여자는 번개탄을 마실 일이 없을 것이고 몇 번 마셔보았다는 수라간 여인의 전언은 틀린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나 수진은 촌구석에서 도시까지 삼십여분 걸리는 거리를 통학하며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했다.
수진이 직접 주임신부에게 말하기 곤란하자 수라간 아주머니를 동원했고, 여의치 않자 나에게 온 것이다.
‘에스 선생님, 저 기능대학에 가 인생을 좀 죽치고 싶어요. 여긴 너무 답답해요.’
‘수진씨 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텐데요.’
‘그래도 욱이 사는 곳에 좀 가까이 가고싶어요. 배우는 것도 좋아해요.’
나는 가끔 캠프기간에 하는 중급 학습반의 커리큘럼을 가져다 배워보라 했으나 수진은 이런 배움은 지겹워요라며 앙탈을 했다.
그러니 수진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녀의 엄마에게 기생할 때 생긴 못된 버릇일 것이다. 그 버릇도 엄밀히 보면 동네에 살던 욱을 오래보기위한 방법일테고, 욱이 무공에 빠져 청춘을 탕진 할 때, 아주 좋아죽겠다는 듯이 바라 보았을 것이다.
수진은 다르게 보면, 남편 한의 폭력으로 인해 과거라는 동굴로 돌아갈 궁리지만 그 이면에는 욱의 어떤 면이 제어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래전 욱이 수진에게 최면을 건 것처럼.
서너번 졸라 나는 결국 허락했다.
한두달은 아주 즐거워하며 통학을 했다.
배움이 깊거나 욱에 대한 신앙이 깊거나.
 
8
 
에스는 여기까지 쓰고 말았다. 대체 무얼 연구 했는지는 모른다. 수진이 흘러와 함께 지내다 어느날부터 수진이 기능대학에 등록을 한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불행하게도 뒤에 누구도 이어받지 않아 수진의 이후 행적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스가 한 두달은 즐겁게 오고갔다는 다음부터, 그러니 20**년 여름부터 수진의 행적은 모호하다는 것이다.
나는 검색을 통해 순심모텔 사건을 하나 보게되었다.
여자 연구는 말하자면 가족과 가정 일과 자신으로 부터의 분리를 바라는 한 여자에 대한 것이란 점, 그것을 에스라는 인물이 유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대체 욱이라는 자는 어떤 자일까 내내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나는 똥을 싸고 화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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